<기획-산재보험 개혁2>

 

노동자의 보편적보장제도와 산재보험의 개혁방향

 

 

임준 / 가천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1. 노동자의 완전한 복귀를 보장하는 노동자 건강보장제도의 모색

 

. 산재보험 패러다임의 변화

 

무엇보다 먼저, 산재보험의 패러다임이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원인을 다른 일반적인 개인적 질병요인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어려운 조건에서 원인주의에 기초하여 산재보험의 수급 자격을 규정할 경우 구조적으로 재해 인정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원인주의의 장점은 재해노동자를 특별하게 보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 초기 산재보험의 일련의 급여들이 다른 사회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이 자동화되고 발전하면서 산업재해의 구성도 그 원인이 명확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 등과 같이 그 원인이 복합적인 재해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형 산재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와 같은 선진국형 산재에서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몇몇 선진국들은 원인주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재해의 원인이 산재든, 산재가 아니든 관계없이 동일하게 보호를 해주는 결과주의 방식을 채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다른 사회보장프로그램의 보장성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불필요해진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아직 절대적 비중은 높지만 점차적으로 단순 사고성재해의 비중이 줄어들고 직업병 및 직업관련성질환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서 선진국형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결과주의의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타 사회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산재보험에 비해 낮기 때문에 당장 결과주의 접근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향후 건강보험 및 타 사회보장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서 결과주의의 전환을 준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사전승인절차의 폐지와 건강보험, 산재보험의 구분 절차 신설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반드시 산재를 신청해야만 급여 절차가 시작되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의사 또는 의료기관이 진료 공간의 최초 접촉 지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직업관련성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는 재해노동자를 진료실 또는 응급실에서 만나게 될 경우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 ‘산재보험으로 적용을 받아야 하는지를 산업재해분류기준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는 체계로 급여 인정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산재보험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분류되면 선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만약 담당 의사에 의한 분류가 어려운 경우 산업의학전문의에 평가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분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되려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에 지정되는 당연지정제도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울대병원 등 대형 3차병원의 일부가 산재요양기관 지정에서 제외됨으로서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이 떨어졌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적용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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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이 노동자 건강을 위한 안전판 기능을 담당하려면 적용 대상의 협소함과 비어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다. 실질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는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소규모사업장 노동자가 포함되는 방향으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사업주의 자진 신고로 가입을 받고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체 등록이 되어 있는 모든 사업장이 자동적으로 가입될 수 있도록 하고, 세금과 유사한 방식으로 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료 부담이 어려운 사업주에 대하여 세금 등 공공 재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안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역시 사업주의 실효적 지배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라도 산재보상보험법의 개정을 통해 근로계약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업주 부담으로 해야 한다.

또한, 현재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도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농작업 재해에 노출되어 있는 농민 등도 제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향후 이들 대상에 대한 적용 확대 방안을 마련하고 점차적으로 대상자를 전체 국민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노동자의 실질 손실을 보상해주는 제도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인 사회연대성을 실현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보장, 사회보장형 산재보험을 달성하려면 급여의 보장성이 선결 조건이 되어야 한다. 소규모사업장 및 비정규노동자에게 불리한 휴업급여 및 장해급여 수준과 취약한 요양급여 수준을 높였을 때만이 불형평성을 줄일 수 있고 위험분산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실질적인 의미에서 재활급여를 신설하여 포괄적인 재활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급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요양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재로 인정되면 산재보험에서 진료비를 모두 부담한다고 하지만, 실제 진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산재노동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필수불가결한 의료가 아닌 부분은 급여를 제공해주기 어렵다는 것이 비급여가 존재하는 논리이지만, 재해노동자가 진료의 내용을 선택할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재해노동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 등과 같이 명백하게 치료와 상관없는 일부 항목만 비급여 항목으로 정해놓고 나머지는 모두 요양급여 범위로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의료재활의 요양급여 항목이 주로 통증의 제거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러한 제도 변화가 있게 되면 재활과 관련된 모든 항목이 급여 범위에 포함되고 보장성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소득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휴업급여의 경우 현행 평균임금의 70%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임금 수준이 낮은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 위협을 받지 않도록 소득보장이 강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휴업급여의 하한선을 대폭 인상하고 일정 급여 이하의 경우는 평균임금을 모두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휴업급여를 탄력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중증장애, 저소득 산재노동자의 소득보장이 현실화되도록 보상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재해노동자의 기능 손실 정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현행 장해등급판정 체계를 개편하고 장해급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직장복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장애인의 복지혜택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산재노동자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장해급여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과 산재이전 직장의 보수가 낮은 재해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후에 급격한 소득 상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 치료부터 직장 및 사회복귀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재활체계의 구축

 

현재 산재보험의 핵심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요양의 장기화 문제는 다른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재활 및 사후관리체계의 부재에 기인한다. 근본적으로 직장복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직업재활 및 고용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 수준이 OECD 국가 수준으로 확대 강화되어야만 요양의 장기화 문제 및 산재장애인의 빈곤화 문제 및 건강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먼저, 산재노동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둘째, 시설, 인력 등 기본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산재의료관리원에 재활센터 기능을 신설 또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원직장 복귀가 가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재노동자에 대해 산재발생 시점부터 직업복귀에 이르는 전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기능과 역량 강화를 통하든 아니면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새로운 기관을 통하여 서비스가 제공되든 모든 산재노동자가 원직장 복귀, 재취업, 전직, 자영업 등으로 직업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취업후의 사후관리까지 1:1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체계를 구축한다.

 

. 근로복지공단을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재편

 

산재보험이 선보장후평가체계로 바뀌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조직체계에 대한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근로복지공단은 보험자로서의 기본 기능인 징수업무와 자격관리업무, 그리고 재활을 포함한 사후관리 및 복지서비스를 중심으로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 특히 산재인가업무를 중단하고 별도의 입증절차나 승인과정 없이 사업주 및 의료기관의 신고에 따라 자동적으로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체계 개편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서비스의 강화다. 산재예방서비스에서부터 재활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질병 및 사례관리(Disease & Case Management)제도를 도입하여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선보장후평가체계 하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심사기능이 폐지되기 때문에 독립적 심사기구인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을 구성하여 그 기능을 이전해야 한다.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은 청구된 진료비의 심사 기능과 함께 급여 제공의 타당성 평가를 수행하고, 진료의 적정성 평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운영에 노동자 및 공익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고 중요 의사 결정에 노동자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2.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노동자의 건강이 평평하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대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프고 다친 결과가 중요하다. 어떻게 다쳤든 간에 노동자가 일을 못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결과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산재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보상을 받고 건강보험이기 때문에 덜 보상을 받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끌어올린 후 중장기적으로 보편적인 건강보장제도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위한 첫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까?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가? 노동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현행 체계를 거부하고 의료기관에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적용 여부를 분류하도록 책임을 부과하며 입증 책임을 근로복지공단에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운동을 전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범위한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되고 건강보험으로 이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보험개혁만으로 운동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현행 무상의료운동을 산재보험을 포함한 보편적 건강보장제도의 강화로 확장되어야 한다. 당연하게 연대의 대상도 확장되어야 한다. 물론, 운동의 출발이 현장의 노동자에게 있어야 함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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