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비정규직 문제를 통해서 본 연대의 의미

    

외눈박이

    

지난 2월3일 설날을 하루 앞두고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15명의 원직복직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60일간 이어온 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45일 이어온 비정규직 지회장의 단식농성, 10일간 이어진 지역 인사들의 연대 단식농성이 끝을 맺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와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급성기관지염, 저체온증과 동상의 고통 속에서, 그들이 곡기까지 끊으며 외친 요구는 간단하다. “불법파견철폐, 해고자 복직, 정규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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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도, 복지도 차별받는 불법파견제도를 없애고, 이에 항의하는 정당한 노조활동을 빌미로 해고된 조합원을 복직시키고, 법에 따라 일정기간이 지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은 사실 지난 2007년 10월 20일 이후 3년을 넘게 이어온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 대한 천막농성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던진 최후의 수단이었다.

GM대우 비정규직문제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이를 뒷받침하는 개악된 노동법, 정규직 중심의 이기적 노조활동 등 성장과 개발을 지향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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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비정규직 문제가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라는 문제인식의 오류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미래의 비정규직 일수 있고, 나의 자식들 또한 비정규직이 될 수 있음에도, 마치 비정규직이라는 집단이 따로 존재하며, 나는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타자의 논리’로 바라봄으로서, 비정규직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다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홀로 피할 수 있다는 그래서 함께 방어벽을 쌓고 그 파고를 막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노력하기 보다는,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결국 모두가 함께 비정규직의 수렁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함께 살자!”라는 GM대우 비정규직 농성장의 구호처럼 자본가가 아닌 우리 민중들은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운명체 임에도 언제 부터인가 연대의 의미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대의 의미는 남의 어려움을 돕는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연대는 노동자 민중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개개인이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여럿이 힘을 모아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즉, 연대는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개인이 힘을 모아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연대는 남을 위함과 동시에 나를 위한 주체적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는 표면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돕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미래의 나 자신과 내 자식들의 고용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며 내가 나서지 않을 일인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작년 12월 15일에는 인천지역의 노동계, 종교계, 학계, 시민사회가 지엠대우 비정규직 대책위를 구성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부족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고 연대의 의미와 성과를 확인하였다.

    

독일의 마틴 니뭘러 목사는 ‘전쟁책임의 고백’이라는 책에서 침묵과 방관의 무서움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나는 나치가 공산당원을 탄압할 때 공산당원이 아니라서 침묵했고, 나치가 노조원을 탄압할 때 노조원이 아니라서 침묵했고, 나치가 유태인을 탄압할 때 유태인이 아니라서 침묵했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아갈 때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900만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아니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절반의 인격체로 대접받아야 하는 것이 G20 유치를 자랑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는 우리의 실상이다. 비정규직은 더 이상 노동인력의 비주류가 아닌 주류이다. 주류를 외면한 노동운동이 무슨 존재의미가 있는가?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에서 연대의 의미가 새삼 되새겨지는 시간이다. 인간답게 “함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