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건강하고 안전한 세상을 꿈꾸며...

 

조옥화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전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 공동대표

 

 

 

2002년도에 출범한 건강한노동세상이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현재의 건강한노동세상(건노세)’ 보다는 그 전신인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산보연)’의 사무국장과 대표를 맡아 주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솔직히 건강한노동세상과 함께 나눌 추억이 많지 않아 약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동안 노동자 안전보건활동의 길에서 만났던 많은 선배들과 후배들, 동지이면서 친구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건노세의 든든한 버팀목인 인천대 김철홍 교수님, 그리고 우리의 호프 장안석 군 등을 포함해서 건노세 식구들 또한 같은 길을 함께 가는 동지로서 고맙고 소중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현재의 건강한노동세상(건노세)’의 전신인 산보연 또한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3년 여름, 백운역 근처의 열 평 남짓 되는 사무실에서 개소식을 갖는 것과 동시에 활동을 개시한 산보연은 홍학기 한의사와 문병호 변호사를 대표로 하여 초기에 약 4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하였는데 주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인천지역 의료인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여러 형태로 노동자 지원 활동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은 홍학기 원장은 서울의 청계피복노조의 진료활동을 하다 인천으로 이주하여 한의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노동자 밀집거주 지역인 송림동 사랑방진료소에서 주민을 상대로 주말진료, 야간진료, 영유아 관리 등의 빈민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당시 이와 유사하게 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무료진료활동을 하던 효성동 백마진료소, 십정동 열우물 진료소 등 5군데 진료소 연합체로, 19864월 발족한 인천지역진료소연합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한 문병호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노동법학회를 조직운영하였으며, 1989년 인천에 정착한 후 노동상담실을 설치하는 등 산보연 창립 당시 인천지 역의 노동인권변호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무국장이었던 1981년도부터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인천의 대표적인 가난한 지역인 화평동, 만석동 일대의 주민 250여 세대를 조합원으로 민들레협동조합을 조직하였으며, 노동자병원을 표방한 인천의원 산재직업병상담실에서, 1988년부터 산보연이 출범할 때까지 산재직업병 추방활동에 복무하였다. 한편 푸른치과, 인천치과 등 치과의원에서도 직업병 상담실을 설치하여 별도 전문상담원을 배치하였으며, 현 평화의료생협의 전신인 평화의원 또한 산재직업병 상담실을 두고 조사연구, 상담, 법률지원, 대책활동 등 노동자 안전보건활동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19936, 마침내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가 닻을 올린 것이다.

산보연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출범 이듬해에 화공약품제조업체인 진흥정밀화학에서 작업 중 폭발사고가 나 인천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대책활동을 펼친 일이다. 때는 김영삼 정권의 초기로 세계화와 국가경쟁력을 부르짖으며 기업의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데 전력질주하던 시기였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관리자의 법정 인원수를 축소하고,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유해물질에 대해서 기업기밀사항으로 치부하여 전혀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난 예견된 인재였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의 시민사회가 합심하여 대책활동을 벌인 결과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공개 를 의무화 하는 등 노동현장의 안전보건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오기도 하였다. 또 같은 해 말, 산보연 산하에 과로사상담센터를 설치하여 변호사 8, 의사 8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상담 및 법적 대응활동을 하였는데, 급속히 강화되는 노동강도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던 현장노동자 특히 사무직 노동자들의 상담이 줄을 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는 산업피로, 돌연사 등의 산업보건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켰고, 과로사 인정 기준의 확대를 가져왔다.

1996년도에는 서울의 노동과 건강연구회를 통해 114 전화교환원들의 직업병인 경견완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인천산보연에서도 인천·부천지역의 6개 전자제품 제조회사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경견완장애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아남산업, 고니정밀, 아남정공, 한국샤프, 대한마이크로 등 주로 20대 여성들이 근무하는 곳으로 이들 중 16% 정도가 경견완장애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경견완장애는 손과 팔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생기는 직업병으로, 사무자동화 등 급증하는 컴퓨터 사용으로 발병하는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의 일종이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97년 말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반복작업으로 인한 통증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려는 사회적 인식이 전무하던 시기이다. 이 활동은 이후 2000년도에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금속사업장 근골격계질환 조사·연구사업으로 이어진다.

 

산보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노동조합 산업안접보건 담당자들의 모임인 산재없는일터회(산일터)’와의 관계이다. 산일터는 산보연 출범 1년 전에 노조 산업안전부서장 들의 자발적인 조직으로 출발하였는데 당시 민주노총 인천본부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부서모임으로 타 간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인천의원 산재상담실에서 근무하던 1988년 당시만 해도 노동조합에 산업안전부서가 조직된 곳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를 노조의 후생복지부서에서 같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산일터는 정보교류, 학습 및 공동사업을 통해 노동현장 산안활동의 모범이 되었고, 산보연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산일터는 산보연과 더불어 건노세의 중요한 조직적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산보연과 산일터 10, 그리고 건노세 10.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현재도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진행 중이다. 아마 사람은 바뀌어도 건노세 활동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더디더라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건노세의 10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진정으로 건강한 노동세상이 앞당겨지기를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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