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세의 든든한 버팀목, 김은복

그와의 술 한 잔의 이야기

 

 

99차 운영위원회가 있었던 74일에 뒷풀이에서 벼르고 별러 김은복 노무사님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건강한노동세상의 운영위원으로서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중 최근 노무법인 현장의 노무사에서 민주노총 인천본부의 상담실장으로 보직의 전환도 있어 심경의 변화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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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사가 되기 전에 야학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야학 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교 입학해서 경당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어요. 말하자면 민속무예인데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리를 다쳐서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됐죠. 학교생활이 심심해지던 찰나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야학 교사 모집 선전물을 보고 무작정 야학을 찾아갔죠.

 

- 경당이요? 민속무예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남자들은 격투기나 무술 이런 것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아뵤~~ 이소룡 흉내내기 같은 어릴적 사진은 누구나 한 장씩은 가지고 있을 걸요? 동아리에서 매일 높이뛰기 연습을 했는데 자꾸 연습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정말 높이 뛰어지기도 하고, 1초에 손목을 360도 회전시키면 장풍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어서 매일 연습했던 기억도 나네요.

 

- 야학교사는 얼마나 하셨나요?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94년부터 1998년에 그만뒀으니까 한 4년 했죠.

 

- 그럼 학교생활 하시면서 야학교사도 하신 거네요?

그 덕분에 졸업은 못했어요.

 

- 아내분과는 야학 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좋아하게 되셨나요?

야학에도 기수가 있는데, 저는 27기고 아내는 29기였어요. 아내랑 6살 차이인데 순수하고 예쁘다 라고 생각하던 차에 아내가 어렵게 벌어놓았던 큰돈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생겨 같이 다니면서 해결해주다보니 더 가까워졌죠. 그 이후로 어딜가든 늘 함께였어요.

 

- 야학 교사는 왜 그만두시게 되었나요?

1998년에 첫째가 생겼어요. 갑작스런 일에 도망치듯 그만두게

릴레이 인터뷰

됐어요. 그 때 제가 야학 2기 의장이었는데 제가 야학을 말아먹은 셈이죠. ㅎㅎ

 

- 노무사는 왜 되고 싶으셨나요?

특별한 이유로 되고 싶었다기 보다는 아이가 생겼고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안성 본가에서 저희 세 식구 신세지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야학 교사들 중에서 노무사가 된 선배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노무사에 대해서 접할 수 있었거든요.

 

- 올해가 노무법인 현장10주년에 되는 해인데 민주노총 인천본부 상담실장으로 보직을 변경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노무사로서 사건을 맡아 진행하는 것이 점점 재미있지가 않더군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즈음 인천본부에서 법규와 상담을 담당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아서 고민 끝에 결심하게 되었어요.

 

- 상담실장 역할은 마음에 드시나요?

한 달밖에 안돼서 정신없는데 솔직히 상담실장의 역할보다는 법규부장으로서 민주노총 인천본부 내에서 체계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지금까지는 인천본부에서 법규 담당이 없었기 때문에 역할이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상태거든요. 앞으로 누가 이 자리에 오더라도 헤매지 않도록 처음 길을 내는 역할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김은복 노무사님의 10년 후 모습은 어떠했으면 하세요?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10년 후 바라는 모습은 주부요. 10년 후면 아이들도 다 커서 자기 앞길 갈테고, 집안일은 지금도 잘하는 편이고, 아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살림만 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 건강한노동세상 운영위원으로서 건세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단기적으로는 지역 노동안전에 관한 행정 감시를 함께 해보고 싶고, 중장기적으로는 건세가 살아남길 바라고, 장기적으로는 건세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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