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 대학 노동인권 교육 후기>

 

나는 노동자일까?

 

전지인 사무차장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폄하되거나 부정적인 단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만해도 그렇다. 폴리텍 대학의 노동인권교육 초반에 노동자라는 단어에 대해 즉석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질문했더니 대부분의 대답은 막노동을 연상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라고 하면 뭔가 빈곤해 보이고 결핍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또한 노동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꺼린다.

실제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는 범죄자를 묘사할 때 이용되곤 한다. 강도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면서 노동자 풍의 마른체형이라니! 도대체 노동자 풍이라는 건 어떤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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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공부할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어디에서도 근로자가 있을 뿐 노동자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유독 노동조합에만 노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뭘까? 그 당시에는 노동3권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일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사회에서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고려한다면 노동조합에서의 노동은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 얻어낸 값진 결실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에 씌운 굴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대부분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고, 그것은 곧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스스로가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임금을 받고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초///대학을 거치면서 어느 시점에서도 노동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적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할 진데 노동인권에 대해 무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폴리텍 대학의 학생들은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물론 대다수는 20~30대이지만 노동인권 교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은 학창시절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방정식이나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영어가 아니라 실제로는 사회에 나가 일을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정규교육과정에 노동자의 권리란 찾아볼 수 없다는 구조적 결함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늘 권리 위에서 태평하게 잠을 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 노동교육시간이 있다. 1년에 6회에 걸쳐 모의 단체교섭을 진행하는데 협상단계에서 배우는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모든 분임조들이 모여서 교섭을 시작하면 분임조들은 협상하고, 동맹을 형성하고, 편지나 요구서를 작성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항의문건을 작성하고, 플랑카드나 벽보를 만들고, 협약을 체결하고, 대중매체와 인터뷰하고, 연설문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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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에야 실전을 통해 겨우 익히는 것들, 심지어 노동조합의 간부가 아니면 평생 해보지 못할 것들을 독일의 모든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면서...

 

프랑스 고등학교의 시민-법률-사회라는 과목에서는 3장 일터에서의 투쟁과 협상에서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을 배운다. 토의 주제를 살펴보면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가?(공공 분야의 파업권에 대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에 타격을 주는가? 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토론 주제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경찰과 판사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파업을 하고, 시민들은 파업이 그들의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인정한다. 시위가 축제인 프랑스의 문화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정규교육과정 중의 하나인 인권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폴리텍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취업을 했을 때 겪을 수 있는 근로계약서 교부 거부, 임금 체불, 부당해고, 산업재해, 성희롱 등 부당한 사례들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으로 노동인권 교육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부당함을 인정하지만 저항해보려고 하는 대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답을 내곤했다.

 

예를 들면 본인 과실이 있는 재해는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과 일하기로 정한 기간 전에 그만두어 사업주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들이 그러했다.

 

나도 우연한 기회에 사회적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접하지 못했다면 평생을 나의 권리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권리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잠을 청하는 1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단 한번의 교육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다. 하지만 이 단 한번의 교육이 그들에게 다른 생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부당함이 어째서 부당한지를 알고 그로부터 부당함을 겪게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여전히 그들의 몫으로 남겠지만...

 

자신의 권리를 찾고, 요구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의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삶이고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국민 누구에게나 상식이 되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권리는 무엇인지, 권리는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노동인권이 상식이 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