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기 사고 당일 이씨가 일하던 인천 송도의 한 아울렛 신축 공사현장. 이씨는 타워크레인 13.5M 위치에서 해체 작업을 하던 도중 추락해 숨졌다. 사진 = 노무법인 나우 제공


산재보험은 노동자들이 업무수행을 하다 발생한 재해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부예산이 아닌 노동자와 사용자가 다달이 내는 보험료에 운영되는 점에서 국가가 시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 국가기관은 산재보험의 주인이 아닌 대행기관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국기기관으로부터 6번이나 산재로 인정받을 기회를 차단당한 46살 노동자 이상목의 죽음은 산재보험은 과연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보험인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지난 2015년 12월 8일 인천 송도의 한 아울렛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져 유명을 달리한 고 이상목씨. 사진=유족 제공


이씨는 2015년 12월 8일 인천의 한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져 숨졌다. 위험한 일을 그만두고 강원도 영월에서 귀농의 꿈에 부풀어 있던 46살 노총각은 더 이상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지옥 같은 크레인에 결국 목숨을 내주고 말았다. 농한기에 마땅한 일거리가 없던 차에 급하게 작업인부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잠깐 아르바이트나 하자고 크레인에 오른 첫날 변을 당한 것이다.

가족들 중 사고소식을 제일 처음 전해들은 사람은 매형 ㄱ씨였다. ㄱ씨가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동료 가운데 이씨가 추락하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격자는 없었지만 13.5m 고공에서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다 사망한 만큼 산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레인 회사 현장소장은 장례식장에서 ㄱ씨에게 “당연히 산재처리가 될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며 “노무사는 선임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가 사망한 때로부터 1년이 넘은 지금껏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고 7개월전 뇌전증(간질)증세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발견되면서 갑자기 이씨의 사망은 개인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둔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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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상목씨가 2015년 12월 인천의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할 당시 작업을 했던 타워크레인. 경찰과 노동부는 이씨가 크레인 해체작업 중 좌측 발판에서 뇌전증(간질) 발작 증세를 보이다 안전난간 사이(흰 원 표시)로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노조는 ‘안전 난간 사이로는 일부러 빠져나가기도 힘들다’며 수사 결과에 의문을 표시했다. 노무법인 나우 제공


처음에 이씨의 추락을 본 적이 없다고 했던 동료작업자들은 사고 발생 12일 후 속속 노동청과 경찰에 출석해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내놨다. 이씨가 발작을 일으킨 듯이 몸을 떨며 크레인 작업발판에 주저앉았다가 떨어지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크레인 위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동료 ㄴ씨는 “이씨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작업발판 바닥으로 쓰러진 후 몸을 꼬면서 머리부터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했다. 1층 바닥에서 작업하던 동료 ㄷ씨도 “작업자가 몸을 웅크린채 발판 바닥과 난간대 사이로 엉덩이가 빠지면서 추락하는 것을 봤다”고 가세했다.

사고당시 ‘쿵’하는 소리만 들었다고 했던 동료들이 갑자기 2주 후에 슬로비디오 화면을 연상시키듯 사고상황을 생생히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은 머리부터, 다른 한 사람은 엉덩이부터 빠졌다고 진술이 엇갈렸다. ㄴ씨는 이씨가 우측발판으로 떨어졌다고 했지만 시신은 크레인 좌측발판 아래 바닥에서 발견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연히 크레인 밑을 지나가다 이씨의 몸이 반대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시신발견 당시 이씨의 입에는 거품 등 뇌전증으로 인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일부러 빠져 나가기도 힘든 작업대 난간 틈 사이로 추락했다는 진술 역시 믿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산재사망으로 처리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원청 건설업체 혹은 크레인 용역업체가 진술을 억지로 만들어낸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할 법 했다.

정회운 타워 크레인 설·해체 노조위원장은 “사고 직후 현장에 달려갔을 때 추락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면서 “사고 책임을 이씨에게 몰아가기 위해 누군가 진술을 짜맞추기 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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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이씨가 추락한 현장에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했던 동료 작업자들은 후에 진술을 바꿨다. 사진=노무법인 나우 제공


하지만 노동청과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국 이씨의 죽음은 뇌전증이 원인이 돼서 추락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사업주들은 산업안전법이나 업무상과실치사죄 적용에서 모두 빠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이씨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되는 것만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사고 직전 뇌전증이 나타났다해도 고공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씨가 추락사하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씨의 뇌전증은 1989년 업무상재해(교통사고)로 인해 우측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치의 소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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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자문의는 이씨가 2015년 뇌전증 발작으로 쓰러진 것이 과거 뇌수술을 받은 것과 연관성이 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사는 이 모든 상식과 의사들 소견을 뒤집었다. 특히 이씨는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해 사망한 만큼 업무상 질병이 아닌 업무상 사고가 명백한데도 경인지사는 질병판정위원회를 열었다. 이씨의 시신을 119구급대로부터 넘겨받은 병원이 직접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사인불명으로 기재한 것도 억울한 판정의 원인이 되었다. 질병판정위는 추락사한 이씨의 뻔한 사인은 외면한 채 사망전 과로나 스트레스가 ‘사인불명’의 죽음 혹은 ‘뇌전증’의 원인이 되었는지만 심의를 진행했다. 졸지에 유족들이 추락사가 아닌 과로사로 산재를 신청한 꼴이 됐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는 이씨의 뇌전증은 개인질병이 아니라 산업재해로 인해 발생한것이라고 소견을 변경했지만 질병판정위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최초 소견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결국 7명의 질병판정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업무연관성을 부정했다. 추락하다 숨진 이씨가 작업 첫날 크레인 작업을 하다 사망한 만큼 과도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다 추락사한 이씨의 죽음을 놓고 노동청, 경찰에 이어 근로복지공단과 질병판정위원회가 연속해서 납득하기 힘든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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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전원 일치로 이씨의 추락과 뇌전증이 업무와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놨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경인본부의 결정에 불복한 유족이 이번에는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실에 심사청구서를 냈지만 이마저 기각당했다. 유족 측은 이씨가 설사 뇌전증 때문에 추락했다고 치더라도 뇌전증은 1989년 산재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재심사실은 “뇌전증으로 인한 업무상재해는 최초 산재 신청때 유족들이 주장한 내용이 아니다”며 심사청구를 기각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추락사를 뇌전증으로 인한 사망으로 뒤바꿔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뇌전증도 업무상재해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었던 유족에게 ‘왜 처음부터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냐’고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결국 유족들은 1989년 산재가 뇌전증의 원인이었음을 인정해 줄 것을 다시 근로복지공단 경인본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경인본부는 25년전 산재로 인해 뇌전증이 발생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또다시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외상성 뇌전증의 경우 잠복기가 20년이 넘을 수도 있다는 의학계 의견은 간단히 무시됐다.

산재신청을 대리한 노무법인 나우 임성원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 조사관에게 왜 이런 상식에 맞지 않는 판정을 내린 것이냐고 물었지만 조사관은 ‘미안하다’는 말만 하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이씨가 1년 넘게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동료 작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가 해당 현장을 비추지 않아 이들의 증언은 산재를 부정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이들은 1년전 노동청과 경찰에서 진술과 달리 경향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사고 정황을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ㄴ씨는 “분명히 추락하는 것을 봤다”면서도 “그 일을 겪고 한동안 일도 할 수 없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말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노동청 조사에서 뇌전증 증세를 보일 당시 이씨의 손 위치까지 세밀하게 진술했던 ㄷ씨는 “0.1초 만에 일어난 일인 데다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뭐가 보이지도 않는다”며 힘들게 진실을 털어놓는듯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다시 전화를 걸어와 “노동청에서 모든 것을 말했으니 그 자료를 보라”고 말을 바꿨다. 경향신문은 ‘억울하게 죽은 동료를 위해 진실을 말해달라’고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두 사람은 끝내 침묵을 지켰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발을 동동 구르는 건 유족이다. 지난 여름 귀농을 결심한 이씨가 머물렀던 강원도 영월의 컨테이너는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있다. 참깨농사를 짓던 밭도 방치됐다. 이씨는 46살이 되도록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전국의 공사현장을 전전하면서도 명절엔 꼬박꼬박 팔순 노모가 계신 울산을 찾았다. 세 번의 명절이 지나면서 이제 체념할 만도 하건만 노모는 막내 아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씨의 매형은 “산재 승인이라도 받아야 장모님에게 이제 그만 처남을 놓아주자고 할 텐데 걱정이다”고 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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