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계약직, 시간제 비정규직에게 ‘치료받을 권리’는 없다.

 

 

장안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

 

 

2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금 상담업무를 접하면서, 나름의 다짐이 있었다.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목표라면, 상담의 목적은 ‘그 사람의 삶을 나누고 더 나은 삶을 만들도록 조직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상담이 들어오면, 가능하다면 해당 사업장을 방문하고 동료들을 만나고 삶의 조건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다짐이 ‘작심 1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건강한노동세상 복귀 후, 2009년 10월.

 

첫 번째 상담사례를 회원들과 공감하고자 한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방문상담을 진행하고 작업현장을 보자며 현장을 방문했다. 재해자는 버스 정비사로 보통은 7:30분~18시까지 주6일 일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새벽 5시에 출근했고 그때 현장을 방문했다.

1.jpg

 

❶ 30년간 버스 정비사로 근무

1979년에 입사하여 버스 정비사로 30여년을 일했다. 차체 하부를 정비하는 것으로, 주된 업무는 브레이크 라이닝과 데스크 교체, 체인벨트 및 발전기 교체, 조인트 조립 작업이다.

2.jpg 3.jpg 4.jpg 5.jpg

 

 

 

❷ 추간판 탈출증은 업무상 재해

앞쪽 60kg, 뒤쪽 120kg(2개)의 타이어를 뺐다 끼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했다. 그것도 30년이란 세월을. 또한 차체 하부 작업의 특성상, 쪼그린 자세나 허리를 숙인 자세가 아니면 작업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샤우드 무게 역시 수십kg에 달한다. 하나의 브레이크 라이닝을 교체하기 위해, ‘타이어 빼기- 볼트 해체-샤우드 빼기- 브레이크 라이닝 교체-샤우드 끼기- 볼트 결착- 타이어 끼기’작업을 수행한다.

 

 

 

❸ 구조조정으로 인해 업무량과 노동강도는 더 증가

회사는 2000년 초반에, 구조조정을 통해 정비사 40여명을 7명으로 축소했다. 기존의 판금, 도장, 엔진, 전기, 하부작업 중 하부작업 외에 모든 작업을 외주화 하고 고용을 대폭 축소한 것이다.

더구나 정비소는 기점과 종점을 나눠 일하니, 한 정비소당 3~4명이 일하는 것이다. 차량이 고장 났을 때, 받는 심리적 압박과 노동강도 증가는 명확하다 못해 가슴이 답답할 정도다.

 

 

 

❹ 대량해고에 이어, 고용형태까지 1년 계약직으로 변경

회사는 대량해고를 넘어, 고용형태까지 변경했다. 운전기사, 정비사, 사무직 등 각각 법인을 분리하고 고용형태를 정규직에서 매년 1월 재계약하는 1년 계약직으로 변경했다. 대량해고에 대한 분노는커녕, 20여년을 일한 노동자들을 1년 계약직으로 변경하는 행태에 할 말을 잃는다.

 

 

 

❺ 수십 년 동안, 노출되었을 석면.

석면이 사용되는 것 중 하나. 브레이크 라이닝이다. 재해자가 일하는 곳 옆에는, 교체된 브레이크 라이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브레이크 라이닝에는 “비석면”이라는 글씨가 박혀있었다. 1979년부터 일한 그 재해자가 교체하는 브레이크 라이닝. ‘비석면’임을 자랑스럽게 글자로 새길 때까지, 그것은 석면이었을 것이다. 파손되어, 곳곳이 파인 석면 브레이크 라이닝. 그리고 대량해고 되어 사업장을 떠난, 수십 명의 노동자들. 어딘가에서 석면으로 인한, 건강장해로 고생하고 있진 않을까?

6.jpg 7.jpg

 

❻ 추간판 탈출증, 산업재해 신청은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찬찬히 읽으며, 산재신청이 불가능했음을 눈치 챈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마도 경험이 없다면, 알 수 없을 것이기에.

1년 계약직으로 고용형태를 변경했고 계약시점은 매년 1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인해 2007년 7월 이후 첫 번째 계약시점부터 2년 이상 고용되어야, 소위 ‘무기 계약직’으로 인정을 받는다.

2008년 1월이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첫 계약이었고 2010년 1월이 지나야 2년이 되어 ‘무기 계약직’으로 되는 것이었다. 상담은 2009년 10월이었고, 결국 산업재해 신청을 2010년 1월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❼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 재해자가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컸다.

재해자가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선, 우선 계약만료가 가장 두려웠다. 당연히 2010년 1월부로 계약을 만료했을 것이다. 30년을 일했는데, 계약직 신세가 된 것에 법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보다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것을 누구라도 선택했을 것 이다.

1년 계약직에게 산재보험은 없는 것과 같다.

 

 

시간제나 간접고용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치료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국가차원의 방치.

전체 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얘기다.

단위 사업장의 산업재해 개별 한 건의 상담을 하다보면, 정말로 “동질적인 요구와 투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만의 삶, 가족의 개별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전체 무산자의 동질적인 요구와 투쟁. 나와 비슷한 삶의 조건에 놓인 사람들은 더없이 많은데, 현실 속에서 내 옆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8.jpg

 

 

“건강권 VS 생존권(고용)”이 맞붙게 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 산재신청을 2010년 1월로 미루기로 하고 12월이 되었을 때, 재해자의 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가 공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하기로 했다고.

처음부터 ‘공상’이 됐다면 산재상담도 없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상’도 받기 어려웠던 것이었고, 비정규직의 경우 ❶ 공상도 안 해주고 ❷ 통증, 재해 정도가 심해서 도저히 일을 하지 못할 때 산재를 신청하는 것이다.

 

 

 

 

이 개 같은 세상을

작사/작곡 김호철

노동자의 피눈물 고여 붉게 물들여진 땅

죽도록 일만해야 목숨 붙여 사는 땅

생존을 위해 해방을 위해 노동자 피를 뿌리니

역사여! 큰 소리 내어 답하라

이 개같은 세상을

가녀리게 움틀거리는 야윈 풀잎의 노래

어둠 깊어 갈수록 온몸으로 타올라

산맥을 넘어 성벽을 깨고 해방의 불을 사르니

역사여 큰 소리 내어 답하라

이 개같은 세상을

역사여 큰 소리 내어 답하라

이 개같은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