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사각지대

성수동, 영세사업장 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성수노동자건강센터> 팀장

 

 

 

가을은 가을이되 서정을 자극하는 계절로서의 가을은 저만치 가버리고, 사람들 가슴마다 돈 걱정, 집걱정, 일자리 걱정으로 답답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지역노조들이 모이고, 활동가 협의체가 만들어지고, 구체적인 공간을 염두에 둔 ‘지역노동자센터’를 구상해온지 7-8년이 지났다.

 

 

지역노조는 노사교섭도 거의 없고, 조합원수도 많지 않은데다, 재정상황 역시 좋지 않아 조합 활동을 활발히 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 대신 조합원 사이에 유대관계가 끈끈해서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고, 노조운동의 초기에 가졌던 열정이 남아있다. 산별노조의 지회로 체제는 개편했지만 내용적 지원은 멀기만 하다. 조직형식은 더 탄탄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영세사업장에 적합한 노조활동을 찾기 위해서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러한 조건 덕분에 상상과 창의를 모색하고, 적은 수의 조합원과 할 수 있는 일상 활동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다.

 

 

 

성수동 지역은 노동건강권 문제를 매개로 만남을 시작했지만, 노동복지와 삶의 질, 영세산업정책과 대응방안을 같이 이야기했고, 경계 없이 활동을 해왔다. 현재 금속, 인쇄, 제화 등 지역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지역복지 단체 등이 영세사업장 활동을 모색하고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수동 영세사업장 실태조사.jpg

 

2005년에 <영세사업장노동자 노동복지실태조사>를 대규모로 진행하면서 지역과 노동운동의 결합은 구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50인 미만 일터에서 일하는 5백여명의 노동자를 만나면서, 노동자 평균임금이 월 150만원 정도이며, 휴일이나 퇴직금 같은 기업복지가 거의 없고,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새로운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5백여명의 노동자를 만나서, 삶의 조건과 욕구를 말로 표현하며 얻어낸 결과이니, 그 시점부터 지역과 노동자라는 관계성이 확 다가왔던 것이다. 영세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구분이 별 의미가 없고, 불안정한 산업정책만큼, 일자리 역시 불안정하다는 사실 또한 확인 할 수 있었다.

 

 

무료건강검진.jpg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소규모사업장노동자 무료건강검진> 사업도 6년째 안정적으로 진행하였고, 활동가 간담회, 지역단체 간담회 등을 열면서 지역노동자센터 건설이 시나브로, 저지르는 단계만 남았다고 생각된 지난해 11월, 가칭 <성수노동자건강센터> 공간을 마련하였다.

센터 공간은 사무공간과 교육장을 구분하였는데, 사무공간에는 노동건강연대와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금속노조서울동부지회, 민주노총서울본부 동부지구협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센터의 밑그림부터, 색이며 모양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동반자들이다.

 

 

교육공간에는 작은 상담실과 부엌 공간을 따로 두고, 마루를 넓게 배치하였다. 강의가 있는 날은 책상과 의자를 놓고, 요가를 하는 날은 매트리스를 깐다.

 

 

공간 이사 후 첫 프로그램은 활동가요가, 노동자요가 이다. 현재 월례특강, 매주 토요일 정신과의사 상담, 업종별 노동자 간이검진, 건강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업종별 노동자 간이검진과 상담은 제화공장 노동자들과 가사관리 노동자, 음식점서비스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성수동에는 전국 수제화공장의 30%가 밀집해있다고 한다. 중국산 싸구려신발에 밀려 사정이 힘들긴 하지만, 국산 수제화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분들이 모여있다. 백화점에 진열돼 있는 고급수제화가 생산되는 현장이다. 이분들은 2~30년동안 일을 하면서 장인이 되었고, 최고의 전문가들이지만 사회적 대우는 너무 낮다. 구두를 만들면서 몸을 쪼그린채로 망치질, 못질을 많이 하고, 본드 사용도 많이 하기 때문에 건강진단과 교육이 꼭 필요한 업종이다. 그러나 사업장마다 정규직고용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개입사업장 등록을 강요하고 있어, 건강 진단이나 노동환경에 대한 권리는 남의 나라 일이라 할 수 있다.

 

 

 

청소, 빨래, 요리 등을 대행해주는 가사관리 노동은 주로 50대 중년 여성들이 일하는 직종인데, 지역 복지단체가 운영하는 조직이라서 검진과 교육을 진행하기가 수월하다. 음식점업노동자 사업은 인근 건대입구 음식점 밀집지역인 ‘맛의 거리’에 나가서 매월 셋째 목요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여 6,7월 두 달을 진행해 보았다. 한국 음식점서비스 노동자의 90%이상이 중국교포여성이라고 들었는데, 이곳에 가보니 과연 그렇다. 중국교포들은 안 아픈 곳이 없다. 건강보험 문제도 있고, 돈도 많이 들어서 병원에 잘 가지는 않는 것 같다.

 

 

또 하나, 음식점 일하면서는 그런대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지만 병원에 가면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른 의료용어들이 많고, 진료문화도 달라서 그런 것 같다. “한국 사람들도 병원 가면 말 잘 못 해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검진을 미리 선전하고, 당일 의료진과 함께 짐 싸들고 나가는 수고에 비하여 노동자 참여가 적어 힘이 안 난다. 평가를 해 보아야 알겠지만, 다른 방식을 찾아볼까 한다.

 

 

매주 토요일 정신과상담을 개설하고 4주를 진행하였다. 정신과 의사 네 분이 격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 오시는 분들은 주로 가정폭력과 빈곤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삼십대에서 오십대 여성이다. 주로 지역 복지단체와 쉼터 시설에서 소개하여 오시는데 사연 하나하나, 문제 하나하나가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버거워 맘고생을 좀 하였다.

 

 

하나는 분명하다. 한국, 남성,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노동자들 중에, 아내와 아이를 학대하고, 돈이 있어도 충분한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도 끝내 놓아주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빈곤, 알콜, 폭력적인 성장과정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면죄(免罪)할 수 없는 가혹한 결과가 여성과 아이들에게 남는다. ‘가폭’ 이라는 줄임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놀랐다.

 

 

전업 활동가들도 정신과 상담에 관심이 많다. 공적(公的)인 언어, 공적인 행위로 위장(?)한 일상을 이어가다 보니 긴장도도 높고, 사생활(私生活)을 가꾸고, 소통하는 시간이 너무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센터는 올 한해를 시범 사업 기간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내년에 정식개소를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 센터 공간으로 이사할 때 재원은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이 주로 마련하였고, 현재 운영비도 비슷한 사정이다.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 노동자, 주민, 사장들에게 벽돌 한 장 값이라도 모금하고, 운영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역노조의 참여, 주민, 지역 단체들의 협업이다. 2002년 이 활동을 시작할 때보다 지역노조들 힘이 많이 빠져 있다. 총노동이 처한 현실이 버겁고, 조합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그래도 노동자가 모여서, 노동자가 말하고, 세상을 만들어가는 꿈을 꾸며, 마음 맞는 동료들이 있어서 한발을 내딛는다.